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
벤저민 프랭클린 · 정치가, 외교관
- 연도
- 1790
- 유형
- 책
- 상태
- 인용만 있음
- 분야
- 자서전, 역사, 인간
- 메모
- 1771년부터 1790년까지 집필된 미완 자서전
이 자료가 낳은 생각 9
인용 14
나는 한 주에 하나의 덕목을 엄격히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첫 주에는 ‘절제’를 방해하는 요인을 멀리하려 애썼고 다른 덕목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 저녁 그날의 잘못을 잊지 않고 표시했다.
그리하여 첫 주에 내가 ‘절제’에 해당하는 첫 줄에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는다면 절제라는 덕목과 관련된 습관은 강화된 반면,
그렇지 않은 다른 습관은 약화된 것으로 생각했다.
다음 주에는 관심의 폭을 확대해 ‘침묵’이란 덕목에 신경 쓰며 두 줄 모두에 검은점이 표시되지 않도록 애썼다.
이런 식으로 마지막 덕목까지 진행하면 한 과정을 끝내는 데 13주가 걸리고, 1년에 그 과정을 네 번 반복할 수 있었다.
(중략)
그 덕목들을 완전한 수준까지는 습득하지 못했지만,
불완전 상태에서도 그 덕목들이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킨 덕분에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즐겁게 대화하는 능력을 갖추었고,
아직도 많은 사람이 나와 어울리고 싶어 하고 젊은이들 또한 내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공손히 행동하고 모두에게 존경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남을 비웃고 모욕하는 못된 습관을 버리라는 충고를 덧붙였다.
그러는 사이 나는 그녀(친구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아졌다.
게다가 당시에는 종교적인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있던 때라
내가 그녀에게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이용해 그녀와 성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했다(나의 또 다른 실수다).
하지만 그녀는 화를 버럭 내며 거부했고 내 행동을 랠프에게 일렀다.
그사이에 나는 억제하기 힘든 젊음의 욕망에 사로잡혀 길거리의 천한 여자들과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
돈도 꽤 들었고 귀찮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성적 접촉에 따른 전염병으로 건강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치기 힘들었다.
나는 소크라테스식 논쟁법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 방법을 내 것으로 만들려 애썼다.
상대 의견에 반박하지만 내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개하지 않고 상대에게 겸손하게 묻고 의문을 제기하는 방법이었다.
당시 나는 앤서니 섀프츠베리와 앤서니 콜린스를 읽고 우리 종교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게 된 터라,
이 방법이 나에게는 안전하지만 상대방을 난처한 지경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이 방법을 즐겨 꾸준히 연습한 끝에 나보다 지적으로 우월한 사람도 굴복시킬 수 있을 정도로 능수능란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방법을 예측하지 못한 까닭에 곤란한 지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거렸다.
따라서 나는 내 지적 수준이나 명분을 넘어서는 승리까지 쟁취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한동안 이 논쟁법을 사용했지만 조금씩 사용을 자제했다.
하지만 겸손하게 내 의견을 피력하는 습관만은 계속 유지했다.
이를테면 반박해야 할 일이 있을 때나 주제에 대해 언급할 때는 ‘분명히’, ‘의심할 여지없이’ 등
의견에 독단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고,
“그것은 이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이러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런 이유로 제게는 이러저러하게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여차여차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게 이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것은 이렇습니다”라는 식으로 에둘러 말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런 습관은 내 의견을 상대에게 관철하려 하거나, 내가 추진하려는 계획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대화의 주목적이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고, 상대를 즐겁게 하거나 설득해야 할 때,
선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독선적이고 거만하게 행동하여 자신이 행하려는 선행의 힘을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런 행동은 늘 혐오감을 유발하고 반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하는 말의 목적, 구체적으로는 정보와 즐거움을 주고받는 일의 목적마저 허물어뜨린다.
네가 정보를 제공할 때 감정을 독단적이고 독선적으로 드러내면 상대방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상대는 여지없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상대로부터 정보를 얻어 지적 향상을 꾀하면서도 현재 의견을 고집하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면,
얌전하고 분별 있는 사람은 말싸움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상대에게 어떤 오류가 있는지 굳이 짚어주지 않는다.
따라서 독선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상대가 즐겁기를 기대하거나 상대를 설득해 네가 바라는 동의를 끌어내기는 어렵다.노션 원문에 뒷부분이 중복 입력되어 있어 한 번만 옮김
나는 런던에서 카이머의 부인과 부인 친구들로부터 그의 못된 성품에 대해 들은 바가 있어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 사람 만나기
나는 인간 사이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진실함’과 ‘성실함’, ‘청렴함’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 리더십: 성품
다른 친구들이 소개해준 소일거리 때문에라도 우리는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다.
나는 어떤 경우라도 하루에 2절판 한 장씩을 꾸준히 조판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조판을 마무리 지으며 일과를 끝냈다고 생각한 순간, 한 줄이 무너지며 두 구절이 뒤죽박죽 되었다.
나는 지체없이 활자를 다시 조판하고, 그 작업을 끝낸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이 이웃들 눈에 들었고, 덕분에 우리는 좋은 평판과 신뢰를 얻었다.
특히 매일 저녁 상인들이 모이는 클럽에서는 새로 문을 연 인쇄소가 연일 화제에 올랐다.
(중략)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근면함을 특별히 언급하는 이유는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될 후손들에게 근면이라는 미덕의 효율성을 깨닫게 해주기 위함이다.
내가 근면함 덕분에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큰 혜택을 보았는지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인쇄소를 차릴 때 진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기 시작했다.
상인으로서 평판과 신용을 얻을 목적도 있었지만, 실제로도 근면하고 검소하게 지냈고 겉으로도 그렇게 보이려 애썼다.
그래서 소박하게 옷을 입고 한가하게 빈둥대는 곳에는 얼씬조차 하지 않았다.
낚시와 사냥도 즐기지 않았다.
간혹 일하지 않을 때면 책을 읽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그러나 여유롭게 책을 읽는 것도 무척 드문 일이었고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구설에 오를 일도 없었다.
일 이외에는 한눈팔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고 여러 문구류 상점에서 구입한 종이를 손수레에 싣고 큰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하여 나는 근면하고 성공한 젊은이라는 평을 얻었다.
또 나는 구입한 물건값을 제때 지불했기 때문에 문구류 수입 상인들이 나와 거래하려 했고 나에게 서적을 공급하겠다는 상인도 있었다.
내 상황은 나날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검소하게 생활하는 습관은 바꾸지 않았다.
→ 검소
허영심을 조금만 버리면 나중에 크게 보상받을 수 있다.
누구에게 칭찬이 돌아가야 하는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허영심으로 그 공을 자기 것으로 가로채는 사람이 있다면,
상대를 시기하는 사람은 그 가짜 깃털을 뽑아내고 원 주인에게 돌려주며 당신의 공적을 공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공정
어렸을 때부터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적은 돈이라도 내 손에 들어오면 책부터 샀다.
→ 독서
책 읽기는 내가 나에게 허락한 유일한 오락이었다.
나는 술집에 들락거리지 않았고, 도박 같은 것으로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독서
공공 도서관의 유용성이 명확해지자 다른 도시,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공공 도서관이 설립되었다.
도서관에 기증 형태의 도서가 늘어났고, 독서는 유행이 되었다.
당시에는 즐길 만한 오락거리가 전혀 없었던 까닭에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책과 쉽게 친해졌다.1786년에 1730년을 회고하는 내용→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