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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

나는 소크라테스식 논쟁법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 방법을 내 것으로 만들려 애썼다.
상대 의견에 반박하지만 내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개하지 않고 상대에게 겸손하게 묻고 의문을 제기하는 방법이었다.
당시 나는 앤서니 섀프츠베리와 앤서니 콜린스를 읽고 우리 종교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게 된 터라,
이 방법이 나에게는 안전하지만 상대방을 난처한 지경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이 방법을 즐겨 꾸준히 연습한 끝에 나보다 지적으로 우월한 사람도 굴복시킬 수 있을 정도로 능수능란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방법을 예측하지 못한 까닭에 곤란한 지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거렸다.
따라서 나는 내 지적 수준이나 명분을 넘어서는 승리까지 쟁취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한동안 이 논쟁법을 사용했지만 조금씩 사용을 자제했다.
하지만 겸손하게 내 의견을 피력하는 습관만은 계속 유지했다.
이를테면 반박해야 할 일이 있을 때나 주제에 대해 언급할 때는 ‘분명히’, ‘의심할 여지없이’ 등
의견에 독단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고,
“그것은 이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이러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런 이유로 제게는 이러저러하게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여차여차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게 이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것은 이렇습니다”라는 식으로 에둘러 말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런 습관은 내 의견을 상대에게 관철하려 하거나, 내가 추진하려는 계획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대화의 주목적이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고, 상대를 즐겁게 하거나 설득해야 할 때,
선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독선적이고 거만하게 행동하여 자신이 행하려는 선행의 힘을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런 행동은 늘 혐오감을 유발하고 반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하는 말의 목적, 구체적으로는 정보와 즐거움을 주고받는 일의 목적마저 허물어뜨린다.
네가 정보를 제공할 때 감정을 독단적이고 독선적으로 드러내면 상대방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상대는 여지없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상대로부터 정보를 얻어 지적 향상을 꾀하면서도 현재 의견을 고집하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면,
얌전하고 분별 있는 사람은 말싸움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상대에게 어떤 오류가 있는지 굳이 짚어주지 않는다.
따라서 독선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상대가 즐겁기를 기대하거나 상대를 설득해 네가 바라는 동의를 끌어내기는 어렵다.

노션 원문에 뒷부분이 중복 입력되어 있어 한 번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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